2022. 2. 7. 00:08ㆍ일상같은 여행/the UK
피터 래빗(peter rabbit)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가보고 싶은 곳일 거예요.
숲과 호수, 산과 작은 마을이 어우러지는 그림 같은 풍경이 굽이굽이 펼쳐지는 곳에 바로 앞서 나온 피터 래빗의 작가, 베아트릭스 포터(Beatrix Potter)가 살았던 곳이 바로 이곳이죠.
호수가 많아 호수 지역이라고 직설할 수도 있는 Lake District는 사실은 굉장히 넓은 지역을 일컫는데요. Lake District는 쿰브리아(Cumbria)라는 주에 속해 있으면서, 잉글랜드에서 가장 큰 국립공원이고 자연을 사랑하는 많은 영국 사람이 꼭 가보고 싶어 하는 곳이라고 합니다.
레이크 디스트릭트는 워낙 크기가 크다 보니 저는 가장 접근하기 좋으면서도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은 Windermere(윈더미어)를 중심으로 둘러보았고, Ambleside(앰블 사이드)에 숙소를 잡았습니다.

다시 피터 래빗으로 돌아와, 레이크 디스트릭트에 방문코자 하는 주요 이유 중 하나는 피터 래빗 일거라고 생각됩니다. 그만큼 이 동화 속의 많은 배경이 레이크 디스트릭트의 다양한 풍경을 담고 있습니다. 저는 피터 래빗의 팬은 아니고, 풍경 좋은 곳에서 신선놀이를 좋아해 이곳을 방문했는데, 어디선가 한 번쯤 보았던 피터 래빗의 본 고장이라고 하니 관심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저에겐 토끼를 굉장히 좋아하는 친구가 있기도 했고요.
지금의 피터 래빗과 베아트릭스 포터에 관련된 곳들은 National Trust에서 관리하고 있습니다.
내셔널 트러스트(National Trust)는 영국의 문화 및 자연유산을 보존하기 위한 국민신탁이면서 운영기구입니다. 한 때, 찰스 공(Prince of Wales)이 대표를 맡기도 했습니다만 엄연한 시민환경운동입니다.
영국 전역에 걸쳐 굉장히 많은 장소를 관리하고 있기에 자연유산의 수도 상당합니다. 자연을 좋아하는 저는 영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연간 멤버십에 가입을 했습니다. 이럴 경우, 입장과 주차가 무료이고 카페테리아 및 상점에서 할인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많이 돌아다닐수록 더 많은 혜택을 받을 수 있죠!

내셔널 트러스트에서 제공하는 배아트릭스 포터 트레일입니다. 말 그대로 발자취를 맵핑해놓은 지도인데요. 하나씩 들여다보면 각 지점마다 이야기들을 담고 있습니다.
이 중 가장 중요하면서도 유명한 곳은 1번으로 있는 Hill Top(힐탑)입니다. 배아트릭스 포터가 살았던 곳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농가입니다. 그리고 2번의 갤러리에 가면 원작들을 직접 감상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이곳은 과거, 남편의 변호사 사무실이었다고 합니다) 3번 Wray Castle은 베아트릭스가 레이크 디스트릭스를 처음 방문했을 때 머물던 곳이라고 하네요.
다녀온 지 시간이 좀 되어 어디까지 보고 왔는지 정확히 기억할 수 없지만 사진을 살펴보며 다시 되돌려보기로 하지요.



제가 윈더미어에 도착해 짐을 풀고 처음으로 찾아간 곳은 Bowness Bay였습니다. Hawkshead라는 곳으로 가야 했는데, 강을 따라 돌아가는 버스를 이용할 수도 있지만 강을 가로지르는 배를 타고 가고 싶었기 때문이죠. (Bay가 있지만 사실상 페리를 타기 위해서는 Ferry terminal이 있는 Bowness Nab으로 가야한다.)


저는 배낭 하나 메고 여행하는 뚜벅이 었기에 단돈 0.5파운드로 건넙니다. 윈더미어가 워낙 큰 호수이고 남북으로 길기 때문에 강의 중간 즈음해서 수시로 운영하는 작은 페리가 있습니다. 건너는 곳은 워낙 거리가 가까운지라 10분이 걸리지 않은 듯합니다.


페리에서 내려 몇 발자국 가다 보면 마주치는 Claife Viewing Station(전망대이죠)에서 잠시 주위를 구경합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픽쳐레스크에 대한 설명인데, 미술이나 건축에 대해 잘 아시는 분은 한 번쯤 접해보셨을 만한 단어입니다. 마치 풍경을 하나의 회화작품처럼 보는 것인데 자세한 설명은 간판에... 제목을 보면 레이크 디스트릭트는 픽쳐 리스크 이전에는 그다지 매력적인 관광지가 아녔다고 하는군요... hmmm. 뒤로하고 걸음을 옮깁니다.
Hawkshead에 있는 Hill Top이 멀지 않기에 걸어서 이동합니다. (물론 버스도 있습니다. 시간 확인은 필수!) 피터 래빗을 빨리 만나보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이 풍경도 듬뿍 만끽하며 지나가 보아야 감흥이 더 잘 살아날 거 같습니다.
목 마른김에 가는 길 참새가 방앗간 들리듯 중간에 나오는 Cuckoo Brow Inn(뻐꾸기 눈썹 여관)에서 하프 파인트 에일을 마시고, 다시 걸어가면 처음부터 대략 2km 정도 인듯합니다.


걸어가면 보면 일단 도로가 굉장히 좁은데 나중에 버스를 타고 알게 된 거지만 거의 묘기 수준으로 작은 미니버스들이 이런 길 위에서 운전을 합니다. 개인적으로 미니밴을 운전하고 다닌다면 당황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배아 트릭스의 고향은 원래 런던이었습니다. 피터 래빗의 작가이면서 환경운동가였던 포터는 16세 때(1882) 처음으로 가족 휴가 겸 레이크 디스트릭트를 방문했습니다. 그때 이곳의 자연환경에 큰 감동을 받게 되고, 레이크 디스트릭트의 자연은 피터 래빗을 탄생시킨 배경이 되었습니다. 1902년 피터 래빗이 출간되었는데, 동시에 굉장히 큰 인기를 모았다고 합니다.
포터는 작가로도 유명하지만, 환경운동가이기도 했습니다.
1905년 포터는 레이크 디스트릭트로 거주지를 옮깁니다. 런던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고 자란 포터는 유산과 책 판매 수익금을 모아 레이크 디스트릭트에 농장과 주택, 땅을 삽니다. 이 지역이 얼마나 넓은지 대략 500만 평에 달한다고 합니다. 나중에 이 소유지를 내셔널 트러스트에 기증하며 자연 그대로 잘 보존이 되길 바란다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기존에 땅을 매입했던 것도 당시 개발 위기에 놓은 이 지역을 지키고 싶어서였다니 환경을 생각하는 마음이 굉장히 큰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덕에 지금도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명소를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것이지요.
포터가 살았던 농가주택이 있는 Hill Top에 다다르면 피터 래빗이 편지를 찾던 빨간 우체통이 가장 먼저 맞아줍니다. 이런 작은 모습들이 아직도 그대로 잘 보존되어있어 상상을 하며 기대를 하며 구경을 할 수 있습니다.


우편함 건너편에는 Tower Bank Arms이라는 펍과 식당을 겸한 숙소가 있습니다.(룸이 4개) 왜 이런 정보까지 알고 있는 거죠. 그리고 좌측으로 보이는 작은 건물로 가면 내셔널트러스트 사무실, 굿즈 숍과 함께 포터의 집으로 향하는 길이 나옵니다.





거실로 들어가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벽난로와 주변을 장식하는 소품입니다. 포터에게 이 집은 피난처이자 생활공간이면서 작업실이었습니다. 평생을 살아갈 공간이었기에, 하나하나 소품을 신경 써서 골라 들여놓았습니다. 선물과 함께 본인의 취향에 맞춰 벽난로 위는 자기류와 금속으로 된 장식들이 있고, 주변으로 고풍스러운 윈저 체어와 원목 책상 등이 정갈한 포터의 취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른 방으로 옮겨보면 정확히 어떤 용도의 공간이었는지 기억은 못하지만, 각각의 장식적인 요소들이 매우 조화롭게 그리고 그 당시를 생생하게 불러내듯 어우러져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이곳은 응접실 겸으로 하는 공간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우측으로 보이는 티팟에서 그런 상상이 됩니다.
공간을 둘러보면서 굉장히 좋았던 포인트 중 하나는 곳곳마다, 포터가 그린 책 속의 일러스트 배경과 실제가 잘 매칭이 되어 비교해볼 수 있도록 되어있는 것입니다. 피터 래빗의 팬이라면 이런 요소 하나가 상상을 불러일으키며 성덕이라도 된 듯 굉장히 즐거울 거란 생각이 듭니다.
포터는 작가로서 뿐만 아니라 농부로서도 삶을 이어나갔습니다. 피터 래빗 시리즈에 기록된 굉장히 섬세히 잘 표현된 자연의 모습은 정원과 주변의 자연으로부터 영감을 받고 시작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손수레에 당근을 가득 싣고 이리저리 다닐 것만 같은 피터 래빗이 떠오릅니다.
많은 수의 내셔널 트러스트 관련 장소들이 겨울에 문 닫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곳도 2월부터 문을 여는 듯하니, 방문예약 페이지를 확인하고 가는 것도 하나의 팁입니다. 이 힐탑은 배아트릭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하고, 팬들에게 제일 유명한 곳입니다.
다음날


앞서 3번으로 나왔던 Wray Castle은 다음날 방문을 했습니다. 이 날만큼은 보트를 타고 윈더미어 호수의 북측을 순회하는 코스를 선택했는데요. Waterhead의 Ambleside Pier에서 티켓을 구매하고 시간에 따라 내리고 타고를 자유로이 할 수 있는 여정입니다. 이런 방식을 hop-on hop-off라고 합니다. 세계의 유명 관광지에 가면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교통수단인데 여기서는 호수가 많다 보니 보트가 그런 식으로 운영이 되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호수 전체를 볼 수 있는 크루즈가 거의 연중으로 운행을 합니다.





Wray Castle




Wray Castle 주변에는 숲과 농장이 펼쳐집니다. 이곳 또한 National Trust에서 관리를 하고 있는데 숲과 어우러진 고딕 스타일의 성이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가지고 있으면서, 성에서 바라다보는 호수와 그 너머까지 보이는 풍경이 또한 넋을 잃고 보게 만듭니다. 이런 곳에 날씨 좋은 날 온다면 더욱 좋겠습니다.







레이 캐슬은 배아트릭스가 이 지역을 방문했을 때 가장 먼저 머물렀던 곳이라고 했는데요. 1800년대 빅토리아 시대에 지어진 네오고딕 양식의 건축물입니다. 배아트릭스의 멘토이자 추후 내셔널 트러스트의 창립멤버인 Hardwicke Rawnsley를 이곳에서 만나게 됩니다.


아무래도 피터 래빗이 이 지역의 큰 인사인 만큼 피터 래빗을 테마로 한 실들이 구성되어있었습니다. 어디선가 피터 래빗이 숨어있을 것만 같은 그런 느낌입니다.



이렇게 가족들이 나들이 나오기 좋은 곳들은 보통 어린이 방문객도 많기 때문에 항상, 어린이들을 위한 놀거리가 준비되어있습니다. 옛날 옛적처럼 그 시대의 옷을 입고, 연극놀이를 해본다거나 블록으로 성을 직접 만들어본다거나, 특별한 날처럼 크레용으로 왕관을 만들어 쓰고 놀거나 하는 활동을 할 수 있습니다. 내셔널 트러스트의 많은 장소를 방문할 때면 어린아이가 있는 가족이 방문하기에 특히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성을 둘러보고 내려와 간단히 티타임을 가집니다. 날씨가 아직은 춥지 않기에 현관을 나와 앞에 있는 피크닉 테이블에 앉아 멀리 풍경을 바라보며 천천히 시간을 갖습니다. 바람의 느낌과 강하지 않은 햇살 그리고 자연의 소리들이 설레는 순간이었습니다.










캐슬 주변은 작은 숲이 우거져있습니다. 산책길이 잘 구성되어있는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물가로 가봤습니다. 보트가 지나갈 때 물결이 들어와 부딪히는 신기한 느낌과 잘게 구르는 작은 모래와 자갈의 소리. 종종 비치는 햇살이 물결에 다시 반짝이는 느낌. 호수를 향해 시원히 열려있는 풍경. 포터가 이곳을 처음 보고 반할만했겠네요. 그리고 이곳을 개발로부터 지켜내기 위해 애쓴 것들에 매우 감사했습니다.

영국에서의 이런 자연이 잘 보존된 모습들이 저는 굉장히 좋았습니다. 빨리 개발해서 수익을 만들어내기보단 천천히 시간을 가지고 자연을 훼손시키지 않는 선에서 자연과 사람이 한데 어우러지는 풍경을 만드는 것이 참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풍경을 보니 저도 잠시 그림이 그리고 싶어 졌습니다. 그래서 한 번쯤은 여행하면서 그려봐야지 하며 챙겼던 공책과 펜을 꺼내 눈앞의 풍경을 담아봅니다. 얼마만의 스케치인지 처음은 어색하지만 천천히 내 눈 속에 맺힌 상들을 종이 위로 옮깁니다. 물결의 소리, 바람의 세기. 햇살의 느낌, 시골 하면 불현듯 떠오르는 눈앞의 오크나무 가지. 지나가는 보트와 그 넘어 보이는 마줌편 작은 숲, 멀리 작은 산들과 뭉게뭉게 구름들.

그림을 그리며 자연을 감상하고 지나가는 보트의 승객들과 손인사를 주고받고.. 마음을 비우며, 풍경을 나의 손으로 채워가는 시간이었습니다.
피터 래빗은 전체 23권의 시리즈로 되어있고 배아트릭스가 키우던 동물들이 주인공과 주변 동물로 등장하며 레이크 디스트릭트의 곳곳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작은 동물들과 시골의 목가적이면서도 자연과 어우러지는 삶을 좋아하신다면 한 번쯤은 책 속의 장면을 상상하면서 그 발자취를 여기서 찾아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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