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5. 31. 00:32ㆍ일상같은 여행/the UK
에버리스트위스는 시골 동네 중 제가 가장 많이 놀러 갔던 동네예요. 옆동네인 마캉(마캉ㅋ흘레스)에 6개월 동안 살았었기 때문이지요. 바닷가 도시인 에버리스트위스에 처음 갔던 건 마캉에 있는 CAT을 답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CAT에 대해 아주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이 부분은 다음으로 돌리고 오늘은 에버리스트위스에 집중해보려고 합니다.
일단 Aberystwyth의 aber는 입구라는 뜻입니다. 이 지방에 흐르는 주요 물줄기인 Ystwyth 강의 입구에 위치해 이런 이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상당히 많은 지역의 이름이 이런 식으로 붙여지는 것을 볼 수 있지요.
에버리스트위스는 잉글랜드라면 브라이튼 같은 휴양도시 느낌의 웨일스의 작은 도시이지만, 대학이 있기에 젊은이들이 많고 활기가 느껴지는 곳입니다. 웨일스에서는 서부의 해안에 붙어있으면서도 딱 중간 즈음에 위치해 남부와 북부를 이어주는 곳이기도 하지요. 교차점이라고 할까요? 자주는 아니지만 런던에서 한 번에 오는 기차도 있습니다. 이런 곳이기에 상업과 행정의 기능 또한 가지고 있는 역동적인 도시 같습니다.
이 도시의 문 같은 역할을 하는 기차역이지만, 그다음으로 제가 이곳에서 제일 많이 방문했던 곳은 웨일스 국립도서관입니다.
에버리스트위스 대학 바로 옆에 위치한 이곳은 큰 규모에 비례하게 다양한 책과 전시가 함께하는 문화공간입니다. 자주 방문하게 될 것 같은 예감에 도서관 카드까지 만들었었죠.
처음 방문했을 때는 전시 위주로 관람을 했는데요. 이곳에서 알게 된 웰쉬 단어, Croeso!입니다. 영어로는 Welcome! 간단하지요?
다양한 영구 컬렉션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오랜세월이 느껴지는 나무로 된 의자였습니다. 이 시절에도 나무가 좋았나 봐요. ㅎㅎ 근사한 조각과 팔걸이가 있는 의자는 옛날에는 권력의 상징이었지요. 사실 지금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거예요. 그런데 이 정교하고 아름다움만이 재밌는 것이 아니라 흥미로운 하나의 지점은 바로 그 크기였습니다.
옛날 사람들이 작았던 걸까? 아니면 웨일스의 이 의자 주인이 작았던 걸까? 추측을 하게 만들었지요. 그리고 살금, 앉아 의자의 주인이 되어보기도 했습니다. 사실 에스테드보드라는 웨일스의 문화축제의 MVP가 앉았을 것만 같단 말이죠.
좌측 바 테이블에 앉아 핸드폰을 충전하던 기억도, 소파에 앉아 친구와 수다를 떨었던 기억도 새록새록합니다.
앞서 말한 제가 살던 마캉(machynlleth)은 굉장한 시골이었기에 큰 상점들이 없어 종종 가드닝이나 목공 도구를 구하러 에버리스트위스에 왔습니다. 큰 마트도 들리고, 간식도 사 먹고 항상 끝에는 바다를 거닐며 시간을 보냈었죠. 이곳에서 어찌나 일이 많은지. 큰일은 아니지만, 에버에서 있었던 소소한 그런 일상들이 지금은 추억의 하늘을 반짝반짝 수놓습니다.
그 하나하나의 별을 따라가 보자면,
처음 에버에 온날 밤 묵었던 숙소가 생각나요. 웨일스분으로 짧은 인사의 순간이었지만, 모든 게 낯설었던 저에게 마캉으로 가는 길을 친절하게 설명해주었지요.
처음 로열 피어 아케이드에 발을 들인 날 번쩍번쩍한 오락실의 한가득 게임기에 깜짝 놀라고.. (영국의 바닷가 피어에 가면 조금은? 흔한 풍경이더군요. 오락실에 가고 싶은 때는 바다로!)
소소한 재미가 있는 마켓플레이스에서는 친구와 몸이 뻐근한 날에 찾아가 마사지를 단돈 35파운드 정도에 받기도 했어요. 마켓플레이스는 시장이 아니라 미니 아케이드형 상점가 같은 느낌이에요. (똑같은 말이지만, 다른 뉘앙스)
해가 좋은 여름날에는 바닷가에 앉아 필수코스인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해안선을 따라 잔잔한 파도를 느끼며 걸었습니다. 해파리가 정말 해변 모래 위까지 쓸려 올라오는데요. 투명하고 말캉한 게 정말 신기해요. 하지만 조심! 하는 것은 필수입니다. (집에 가기 전 밤바다도 기억에 오래 남아요 ;)
다큐영화를 보러 함께 일하는 친구들과 다 함께 Amgueddfa Ceredigion Museum에 나들이 나가기도 하고
(겉에서 보면 갤러리 같지만 위층으로 극장 공간이 함께 있어요!)
해변에서 신나게 놀다가, 버스를 놓치지 않으려 맨발로 달려간 Terrace 길.
근육을 다쳐 퉁 부어 움직이지 않는 손을 불안해하며 Bronglais Hospital 응급실에 달려가 치료를 받고
극처방으로 소꼬리탕을 만들어 먹겠다며 들린 Rob Rattray 부쳐샵
비가 부슬부슬 오는 바닷가를 걷다가 에버리스트위스 성 유적지와 전쟁기념비 공원을 오가며 요가에 심취한 친구는 아무도 없는 쓸쓸한 밤에 깊은 호흡을 내쉬며 잠시 명상을 하기도 했어요. 이 친구도 참 특이했지만, 동양인이 적은 이곳에 온 저도 참으로 이곳 사람들에게는 낯선 존재였겠지요.
해안가를 따라 있는 주차장에서 친구의 오래된 빨간 푸조를 타고 함께 Sting 노래를 들으면서 피시 앤 칩스를 우걱우걱 먹었었죠. 이때 피클로 만든 계란과 완두콩 메쉬를 처음 먹어보았네요. ㅎㅎ 이미 해가 진 창밖으로는 몰아치는 바람에 파도가 부서져 차 위로 비처럼 내리고 있었던 깜깜한 밤이었습니다.
무슨 일이 이렇게도 많이 여기서 일어난 걸까요? 갑자기 이 도시가 너무나 그립네요.
왠지 그 시절의 내가 아는 모든 이가 이곳을 떠나고 없지만, 그 외형은 그대로일 것만 같은데.. 이곳에 다시 간다면 전 쓸쓸한 느낌을 받을까요? 아니면 혹여나 너무나 바뀐 모습에 낯섦을 느낄까요? 이 글은 여기서 끝이 아니라, 다시 가서 추억들을 덧붙이고 싶은 마음입니다.

추억 속의 에버리스트위스를 다시 걷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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